해외상표출원 유사 거절 위기? 브랜드 이름 안 바꾸고 등록한 H사 사례
"베트남이랑 태국에서 상표 등록이 거절됐답니다.
이름이 너무 흔하다는데...
포장지 인쇄 다 들어갔는데 어떡합니까?"
해외 진출을 앞둔 기업에게 이보다 더 등골 서늘한 소식이 있을까요? 수출 선적 날짜는 다가오는데, 가장 중요한 '브랜드 이름'을 쓸 수 없다니요.
최근 저희 사무소를 찾아주신 화장품 브랜드 H사 대표님의 사연입니다. 100억 원대 매출을 목표로 동남아 4개국(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진출을 야심 차게 준비하셨지만, 현지 대리인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등록 불가였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브랜드 네이밍이 제품의 효능을 설명하는 쉬운 영어 단어 조합이었고, 현지에 이미 유사한 발음이나 철자를 가진 선점 상표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두 가지 갈림길에 섭니다.
1. 눈물을 머금고 브랜드를 리뉴얼한다. (마케팅 비용, 패키지 폐기 비용 발생)
2.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하다가 비용만 날리고 포기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시선은 다릅니다. "이름을 바꾸지 않고도, 등록받을 수 있는 제3의 길"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H사가 어떻게 4개국 동시 거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기존 이름을 지켜내며 무사히 수출길에 올랐는지 그 우회 전략을 공유하려 합니다. 유사 상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계신 대표님들께 이 글이 명확한 해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1. H사의 해외상표출원, 왜 거절되었을까?
상표 심사의 핵심 기준은 식별력입니다. 즉, 내 상품과 남의 상품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H사의 브랜드명은 마케팅적으로는 훌륭했습니다. 소비자가 듣자마자 "아, 피부가 맑아지는 화장품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단어였으니까요. 하지만 해외상표출원, 특히 심사가 까다로운 국가에서는 이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심사관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 단어는 제품의 성질을 설명하는 기술적 표장이다. 누구나 써야 하는 단어를 특정인에게 독점시킬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시장에 진입해 있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철자 한두 개가 다르더라도, 발음이 유사하거나 관념(뜻)이 통한다면 유사 상표로 간주되어 등록이 거절됩니다.
H사 대표님은 "우리는 철자가 다르지 않냐"며 억울해하셨지만, 상표법은 냉정합니다. 소비자가 혼동할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심사관은 거절 결정을 내립니다. 텍스트(문자)만 고집해서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2. H사가 등록받을 수 있었던 전략: 결합상표
문자로 뚫을 수 없다면,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저는 H사 측에 즉각적인 전략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대표님, 텍스트 상표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대신, 우리 브랜드만의 독창적인 '로고'를 결합합시다."
이것이 바로 결합상표 전략입니다. 상표는 크게 칭호(이름), 외관(모양), 관념(뜻)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현재 H사는 칭호와 관념에서 식별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외관에서 압도적인 차별성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글자체만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가 봐도 "이건 그림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도형이나 캐릭터, 혹은 글자 자체를 그림처럼 도안화한 로고를 문자 상표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1) 심사관이 상표를 볼 때, 식별력이 약한 문자 부분보다는 독창적인 로고 부분(도형)에 시선이 쏠리게 만듭니다.
2) 전체적으로 관찰했을 때, 선점 상표들과는 외관상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3) 결과적으로 문자의 유사성을 로고의 독창성으로 희석시켜 등록 가능성을 높입니다.
물론, 문자에 대한 독점권은 다소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수출을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완벽한 권리를 고집하다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것보다는, 사용 가능한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백번 현명한 선택입니다.
저희의 제안에 따라 H사는 급하게 브랜드 정체성을 담은 심볼 로고를 제작하여 문자와 결합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출원 전략을 전면 수정하여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4개국에 다시 출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가장 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베트남을 포함하여, 4개국 모두에서 등록 결정 통지서를 받아냈습니다.
"유사 상표가 많아 절대 안 된다"던 현지 대리인들도 놀라워한 결과였습니다. 심사관들은 문자 부분의 유사성보다는, 결합된 로고가 주는 전체적인 외관의 차별성을 인정해 준 것입니다.
덕분에 H사 대표님은 기 제작된 패키지를 폐기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제품 패키지에 등록된 로고를 추가하거나, 스티커 라벨링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합법적인 상표권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수출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만 원의 손실을 막고, 예정된 비즈니스 스케줄을 지켜낸 것입니다.
상표 상담을 하다 보면, "나는 무조건 텍스트로만 받고 싶다"고 고집하시는 대표님들을 종종 뵙습니다. 그래야 권리 범위가 넓고 강력하다는 사실, 저도 잘 압니다. 변리사로서 욕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등록되지 않은 상표'는 휴지 조각보다 못합니다. 특히 해외 시장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최고를 고집하는 아집이 아니라, '최선'을 찾아내는 유연함입니다.
상표권의 본질은 내 사업을 지키는 방패입니다. 당장 날아오는 화살(경고장, 모방품)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상표권입니다.
혹시 지금 해외 진출을 앞두고 "이름이 흔해서 안 된다", "유사 상표가 있다"는 이유로 좌절하고 계신지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문자가 막히면 도형으로, 도형이 막히면 색채로 뚫을 수 있습니다.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대표님의 소중한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이름 불릴 수 있도록, 마크와이드가 그 우회로를 찾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